잡동사니

자신이 디자인한 ‘꾸뛰르 패션’ 봄바람 탔다

자수의 달인 2007. 4. 20. 09:23
[그 여자네]자신이 디자인한 ‘꾸뛰르 패션’ 봄바람 탔다
입력: 2007년 04월 19일 09:36:02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특정 디자인이나 브랜드가 유행하면 거리 전체가 비슷한 분위기로 물들곤 했다.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 서 있으면 아까 지나갔던 사람이 또 지나가고, 지나쳤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고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거리의 양상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매치와 자신이 가공한 독특한 소품, 자신의 요구를 반영해 주문한 액세서리 등을 몸에 두른 개성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죽하면 요즘은 ‘꾸뛰르’적 패션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꾸뛰르는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의 줄임말로 고급 의상실의 맞춤옷을 뜻한다. 기성복을 뜻하는 ‘프레타포르테(pret a porter)’의 반대 의미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프린트 할 수 있는 브릭스의 ‘마이-백’ 라인.

지난 14일 토요일 오후,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홍대 앞 거리에서는 ‘나이키’가 진행하는 이벤트가 한창이었다. 나이키 ‘에어포스원’ 운동화에 자신이 원하는 색깔이나 무늬를 그려넣을 수 있게 해 주는 행사였다. 행사에 참여한 대학생 김동원씨(25)는 “하나뿐인 나만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같은 운동화라도 나만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 좋잖아요”라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개성대로 손질한 운동화들도 선보였다. 신발 외부에 보석을 빈틈없이 박아 넣은 것, 자기 나름의 개성있는 프린트를 그려 넣은 것 등 기성품이라고만 생각했던 운동화에 개개인의 재기가 넘쳐났다. 이 ‘이용자제작(customized)’ 운동화를 흥미롭게 살펴보고 있던 회사원 이하나씨(30·여)는 “나도 집에서 남는 천을 덧대어 새로 재봉한 옷이 있다”며 “요즘 들어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디자인한 소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고 말했다.

그렇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디자인’이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진열대에 표정없이 늘어서서 선택을 강요하는 기성품은 싫다. 흐름에 민감한 브랜드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내가 만들어 내가 입고 쓰는 ‘맞춤 디자인’을 선보이는가 하면, 공모전을 통해 소비자들의 아이디어를 빌려 그들의 욕구를 반영한 디자인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이와 함께 예술과 디자인을 접목한 ‘아티스틱(artistic)’한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는 경향이다.

# 내가 만든 디자인이 기성품으로

공모전이 ‘붐’을 이루고 있다. 패션, 인테리어 제품, 아기용품, 주류 등 할 것 없이 각종 브랜드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공모전을 앞다퉈 진행중이다. 소비자의 관심도 끌면서, 이들이 원하는 바를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파악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한달 동안 환경친화적 디자인을 주제로 ‘오가닉 티셔츠(organic T-shirts)’ 공모전을 진행한 ‘베이직 하우스’의 조환수 상무는 “공모전을 열어 친환경 패션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끌어올리고, 직접 참여를 통해 능동적으로 제품 생산에 관여하는 고객들의 달라진 성향에도 충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고객의 요구에 맞춘 고객 참여 디자인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얘기다.
운동화에 원하는 문양을 그려넣을 수 있게 해주는 나이키 ‘원러브’ 행사.

캐주얼 브랜드 ‘엘록(ELOQ)’에서도 티셔츠 디자인 공모전을 진행중이다. ‘오아시스’라는 주제로 소비자가 직접 입고 싶은 티셔츠 프린트를 디자인해 응모하고, 우수작은 오는 여름, ‘핫 서머(hot summer)’ 아이템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유니클로(UNIQLO)’에서도 세계인을 대상으로 ‘유니클로 크리에이티브 어워드(UNIQLO Creative Award)’라는 이름의 티셔츠 디자인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수상 작품은 일본에서의 시상식과 국내외 전시회를 갖고 프린트T로 상품화돼 전세계의 유니클로 매장에서 판매된다.

아예 상시적으로 디자인 공모전을 열고 있는 곳도 있다. ‘프레스펀’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다. ‘디자인은 습관이다’라는 모토로 지난해 11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벌써 5회째 진행중이다. 이곳에서 수상한 수상자는 디자인을 직접 사업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공모전 외에도 구매자들이 직접 인터넷 상에서 티셔츠에 들어갈 프린트를 손쉽게 디자인할 수 있어 인기다. 프레스펀의 김원식 이사는 “이제는 프로슈머의 시대다. 이용자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콘텐츠가 중심이 될 것”이라며 “직접 만드는 디자인의 참여율이 점점 높아져 5월쯤엔 본격적으로 그랜드 오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프로슈머(prosumer)’란 공급자(provider)와 소비자(consumer)를 결합한 말로, 소비자들이 제품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이밖에 유아용품 브랜드 ‘아가방’은 ‘아가방 캐릭터 및 로고체 디자인 공모전’을 열었으며, ‘카프리’ 맥주는 지난 9일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제품 디자인을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 패션도 DIY!

직장인 김화영씨(26·여)는 얼마 전 생일에 속옷 세트를 선물 받았다. 요일마다 다른 색깔과 무늬로 바꿔 입을 수 있는 브래지어 끈과 컵이 준비돼 있는 여성용 속옷 세트다. “내가 원하는 색깔의 끈으로 바꿔 끼울 수도 있고, 여러가지 믹스 매치가 가능해 마음에 들어요.” ‘직접 디자인해 입는 속옷’이라는 모토 아래 약 30여가지 색상의 어깨끈과 15가지 색상의 브라 컵을 내놓은 언더웨어 브랜드 ‘바디팝’은 요즘 20~30대 젊은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DIY는 ‘Do It Yourself(스스로 하기)’, 내 스스로 만드는 제품이란 뜻이다. 본래 DIY는 영국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는 집 수리와 관련해 많이 쓰였던 말이지만, 요즘은 인테리어, 소품 할 것 없이 온통 DIY가 인기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개인의 개성이 담긴 나만의 차별화된 아이템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브릭스(BRIC’S)’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가방에 프린트할 수 있는 ‘마이-백(My-Bag)’ 라인을 출시했다. 이미지 파일을 가지고 매장을 방문하면 트렁크, 숄더백, 토트백, 파우치 등 6가지의 다양한 디자인의 가방 전면에 원하는 이미지를 새겨 넣을 수 있다. 직접 이탈리아 본사에 이미지를 전송해 3개월 정도의 제작기간이 소요되지만 가족 사진, 아이의 사진, 개인이 좋아하는 이미지 등 자신만의 개성을 세련되게 표현해주기 때문에 인기다.

안경테 전문업체 ‘코펜하겐 아이즈’는 ‘오더메이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기본적인 모델은 정해 놓지만 사이즈나 소재, 색상 등을 소비자가 직접 선택할 수 있다. 23가지의 색상과 6가지의 패턴 중에서 기본적인 모양과 색깔을 선택할 수 있고, 테 부분과 다리 부분의 색상을 투톤으로 결정할 수 있다. 올해 처음 우리나라에서 런칭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금강제화’에서는 탄생석을 메인 장식으로 하는 ‘당신만의 특별한 보석 슈즈’를 선보였다. 1월 탄생석인 석류빛의 가넷, 2월에는 보랏빛 자수정을 시작으로 3월에는 아쿠아마린을 출시했고, 4월에는 다이아몬드 등 12월까지 각 월의 탄생석 구두를 순차적으로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굽 높이, 굽 너비 등이 개인의 취향 및 사이즈에 맞게 맞춤 제작되며, 원하는 고객에게는 이름을 새겨 넣어 주기도 한다. ‘크리스찬 라크르와 옴므’에서도 옷의 안감에 사용될 디자인과 프린트, 컬러 등 디테일을 고객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를 진행중이다.

# 보다 ‘아티스틱’하게

개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되, 올해는 좀더 예술적인 느낌을 풍기는 제품들이 많아졌다. 기성품에 예술가의 작품을 접목시킨 라인을 출시한다든지, 예술가의 이름을 건 공모전을 실시하는 곳도 많다. 뿐만 아니라 티셔츠 공모전의 수상작들도 대부분 트렌디하기보다는 아티스틱한 분위기다.

‘쌈지’에서는 ‘숨겨진 리틀 앤디워홀을 찾아라’라는 표제를 걸고 팝 아트 티셔츠 공모전을 실시했다. 팝 아트를 주제로 한 창조적인 디자인이면 어떤 것이든 가능했다. 지난 5일 발표된 당선작들은 모두 재기 넘치는 팝아트를 선보였다. 당선작은 역시 상품화돼 매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유니클로’는 지난 3일 김윤아, 류승범, 사이다 등 한국의 각종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한 티셔츠의 전시회를 가졌다. 이 행사는 매년 선보이는 ‘티셔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비자들의 예술적 욕구에 맞춰 신선하고 다양한 티셔츠를 선보이기 위함이다. 이날 전시회 때 전시됐던 티셔츠들은 수량에 제한을 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19일부터 전 매장에서 판매된다.

〈이로사기자 ro@kyunghyang.com〉